지은이 박종식. 펴낸 곳 도서출판 경남. 의령 사람이 지역 인물을 소재로 장편 소설 560페이지를 쓰기는 전례가 없어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의령은 ‘인물의 고장’이라고들 한다. 악사 우륵도 그 중 한 명. 그의 고향은 성열현.
지금의 부림면이라고 지역 사람들은 믿고 해마다 축제를 열고 있다. 9월 5일 ‘2026 의령 신반한지우륵문화축제’가 우륵문화마당에서, ‘제13회 의령우륵탄신기념 전국가야금대회‘가 5·6일 의령군청소년수련관에서 각각 개최됐다.
소설 이야기를 해야지 인물의 고장이 어떻고, 그 관련 축제 및 대회가 어떻고 하며 시작부터 웬 생뚱맞은 소리냐며 타박을 할지도 모르겠다. 곽재우, 안희제, 이극로, 이우식, 안호상, 이병철, 이종환. 의령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목숨을 바쳐 싸우고, 나라가 가난할 때는 경제와 문화를 일으켜 세운 인물들이 유독 많아 ‘의병의 고장'이자 ’부자의 정기가 흐르는 고장‘으로 자부심이 높은 지역이다.
올해 기준으로도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인구감소지역’이자 매우 심각한 ‘지방소멸 고위험 지역’인 이곳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역 사람들의 눈에는 이러한 인물들이 어떻게 비칠까. 위기를 직시하고 자신을 되돌아보며 성찰하는 모티브일까?
‘악성 우륵’의 지은이는 1961년생. 의령읍 무전 출생. 생업인 광고기획의 현장에서 글의 무게를 익혔다고 했다. 7년 동안 우륵의 발자취를 찾아 현장을 누비며 자료를 모으고 이야기를 빚어냈다고 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빚어냈을까, 보다는 도대체 이 이야기를 왜 빚어냈을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 생겼다. 물론 이야기의 내용이기도 하다. 소설은 모두 27개로 나눠 구성됐다. 1. 성열현, 2.장마, 3. 객구, … 25.닥종이, 26. 월광 태자(도설지왕), 27.귀화. 우륵의 고향 성열현 이야기를 시작으로 하여, 마지막에는 조국을 배신(?)하고 신라로 귀화하는 것을 끝으로 하여 연대기적 서술을 따르고 있다.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는 “이 소설을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배웠던 삼국시대 역사 이면에 엄연히 존재했던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가야라는 연맹국의 잃어버린 역사적 진실을 유추해 볼 수 있고, 우리 민족의 대중악기 가야금을 만들고 대중악을 창시한 악사 우륵의 생애와 예술성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했다. 키워드는 ‘가야 연맹국의 역사적 진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대중악기 가야금을 연계한 대중음악 창시’.
‘27. 귀화’ 544페이지에서 우륵은 곰곰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나라에서 혼인동맹 하였답시고 법흥의 잔꾀에 속아 금관가야를 잃었고, 도설지왕이 백제와 연합하여 보국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병화의 참상에서 나의 음악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리고 미루어 왔던 예악부원까지 결국 폐쇄되질 않았던가.’ ‘하지만 법흥왕으로부터 초청을 받았고, 신라는 지금 대중악이 없다고 하였는데 내가 신라로 넘어가 가야금으로 신라 백성의 대중악을 만드는 것이 나의 식솔들은 물론 나의 가야금과 대중악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우륵은 곰곰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지만, 그 답을 스스로 내지 못했다. 그러나 가슴 한쪽에서는 자신의 신라 대중악 부흥을 위하여 국경을 넘어 법흥왕과 신료들 앞에서 가야금을 탄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면 여기에서 말하는 대중악이란 무엇인가. 지은이는 ‘작가의 말’ 6페이지에서 ‘우륵의 음악에 대한 천재성이 가야연맹 7소국으로 소문이 나게 되자, 가실왕(가야연맹 9대 왕)이 우륵을 불러 ‘고’라는 악기의 소리를 듣고 감탄하여 가야금이라 명명하게 되고, 우륵을 궁정악 정악보다는 모든 백성이 함께 할 수 있는 대중악을 부흥시킬 수 있도록 예악부원을 지어주고 궁정악사로 임명하자, 우륵은 가야금을 만들고 곡과 노래를 지었다’라며 ‘가실왕은 우륵으로 하여금 당시 백성들 사이에 저절로 생겨나 악보도 없이 구전되어 오던 민요를 채집하여 노랫말 속에 방언을 통일하고 대중악을 부흥시켜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단으로 삼았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륵의 대중악은 한마디로 말해서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당시의 ‘국책사업’’인 셈이다.
‘성열현’은 지금의 부림면(옛 사이기국 영토). 부림면에 있던 독자적인 소국인 ‘사이기국’은 시간이 지나 고령 중심의 대가야에 복속되면서, 또 대가야의 지방 행정 단위로 바뀐 것으로 이해된다. 결과적으로 우륵이 지은 가야금 12곡 중 하나인 『성열현』이라는 곡은, 대가야의 영토가 된 옛 의령 지역(사이기국)의 향토 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곡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우륵의 평생 화두는 소국인 ‘사이기국’의 한계를 극복하고 가야연맹을 신라백제의 위협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하여 ‘가야금을 매개로 하여, 백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대중악’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야기의 구성이라는 예술적 테크닉이 필요하다.
이 작업은 노랫말 속 방언을 통일하는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 지역 세력과의 알력은 있기 마련. ‘5. 우륵의 소리’ 55∼56페이지에는 이러한 고뇌가 보이지 않는다. 우륵은 공들여 만든 현학금으로 작곡하여 익힌 곡조들을 제자 니문과 함께 미타산에 올라 탄주해 보기로 한다.
‘우륵이 잠시 미타산 신령께 고하듯 현을 튕겨 소리 질을 확인하고는 연습 탄주를 시작하니, 그 소리는 창공으로 울려 퍼지고 농음은 산바람을 타고서 끝 음이 사라질 듯 이어지더니 조신한 미타산을 감아 돌며 초계, 적중의 하늘 구름 위로 아련히 퍼져나갔다.’ ‘스승님의 음악은 이제 예사롭지 않습니다.’ 긴장 및 집중이 떨어지는 이야기 전개 방식이 아쉬운 대목이다.
중국 사극을 보면 거문고의 선율 변화를 통해 ‘가장 조용한 순간에 가장 격렬한 갈등이나 깊은 감정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느끼게 하는 극적 효과를 내기도 한다. 유종철 기자